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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선·이성적 활동·덕’의 갑은 아리스토텔레스, ‘몸의 고통과 마음의 혼란으로부터의 자유’의 을은 에피쿠로스이며, 둘 다 이성(사려)의 역할을 강조하므로 5번이 정답이다.
핵심 개념
행복을 이성의 탁월한 발휘(덕)로 본 아리스토텔레스와 고통·혼란이 없는 정신적 쾌락으로 본 에피쿠로스의 행복관을 비교한다.
단서 따라가기
갑: 행복은 … 최고의 선 … 정신의 이성적 활동 능력이 그에 알맞은 덕을 지니고 탁월하게 발휘될 때 실현행복을 인간의 최종 목적으로 보고, 이성의 기능을 탁월하게 발휘하는 덕 있는 삶에서 실현된다고 보는 입장 갑 = 아리스토텔레스 ➔ ①·② 판단
을: 몸의 고통이나 마음의 혼란으로부터의 자유 … 사려 깊고 아름다우며 정의롭게 살지 않고서는감각적·육체적 쾌락이 아닌 정신적 평온(아타락시아)을 추구하며, 이를 위해 사려(이성적 판단)가 필요하다는 입장 을 = 에피쿠로스 ➔ ③·④ 판단
정답 근거
갑(아리스토텔레스)은 행복이 인간의 고유한 기능인 이성을 발휘해 덕을 갖출 때 실현된다고 본다. 을(에피쿠로스)은 사려 깊게 살아야 고통과 혼란이 없는 쾌락을 누릴 수 있다고 보며, 어떤 욕구를 충족할지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두 사상가 모두 행복한 삶에 이성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보므로 5번이 옳다.
선지별로 왜 틀렸나
①
함정 행복이 ‘최종 목적’이라는 표현만 보고 덕과 행복을 별개로 생각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적 활동이 덕을 지니고 탁월하게 발휘될 때 행복이 실현된다고 보므로, 덕 없이 행복할 수 없다.
②
함정 ‘여러 선 중에서’라는 표현을 행복이 다른 선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는 뜻으로 오해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그 자체로 추구되는 최고선이자 인간의 최종 목적으로 본다. 다른 것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③
함정 에피쿠로스가 쾌락주의자라는 사실만 기억해 감각적 쾌락을 중시한다고 착각하기 쉽다.
에피쿠로스는 방탕한 자들의 쾌락이나 육체적 쾌락이 아닌, 마음의 혼란이 없는 정신적 쾌락을 추구해야 한다고 본다.
④
함정 ‘마음의 혼란으로부터의 자유’를 욕구를 완전히 없앤 상태로 확대 해석하기 쉽다.
에피쿠로스는 자연적이고 필수적인 욕구의 충족은 필요하다고 보았다. 모든 욕구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은 을의 입장이 아니다.
이 문항이 묻는 능력
에피쿠로스를 감각적 쾌락주의나 금욕주의로 오해하는 수험생, ‘모든 욕구’처럼 범위를 넓힌 표현을 놓치는 수험생을 가려낸다.
다음에 비슷한 문제를 만나면
제시문의 핵심어(최고선·덕 / 쾌락·평온)로 사상가를 먼저 확정하고, 선지의 ‘모든’, ‘~에서도’ 같은 극단적 표현이나 주장의 방향이 뒤집힌 부분을 찾아 판정한다. ‘갑과 을’ 선지는 두 사상가의 공통점이 정말 있는지 따로 확인한다.
관련 개념
에우다이모니아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행복 개념으로, 단순한 쾌락이 아닌 인간 고유의 기능(이성)을 탁월하게 발휘하는 활동 속에서 실현되는 번영·잘 삶의 상태.
쾌락주의적 행복관행복을 쾌락의 획득과 고통의 회피로 정의하는 관점. 에피쿠로스는 고요한 정신적 쾌락(아타락시아)을,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쾌락을 강조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 덕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 아타락시아 정신적 쾌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