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최고선·덕에 따르는 정신의 활동'의 갑은 아리스토텔레스, '방탕한 쾌락이 아닌 몸과 마음의 고통으로부터의 자유'의 을은 에피쿠로스이므로, 을이 감각적 쾌락을 추구해야 한다는 3번이 옳지 않다.
핵심 개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을 탁월하게 발휘하는 덕 있는 삶을 행복으로 보고, 에피쿠로스는 몸의 고통과 마음의 불안이 없는 상태(아타락시아)를 행복으로 본다.
단서 따라가기
행복이란 덕에 따르는 정신의 활동이며 … 최고선이다행복을 인간 삶의 궁극 목적(최고선)으로 보고 이성의 탁월한 발휘, 곧 덕을 행복의 조건으로 보는 입장 갑 ↔ 아리스토텔레스
방탕한 자들의 쾌락이 아니라 … 몸의 고통이나 마음의 혼란으로부터의 자유감각적·순간적 쾌락이 아니라 정신적이고 지속적인 쾌락, 곧 고통 없는 평온한 상태를 추구하는 입장 을 ↔ 에피쿠로스 ➔ ③ 틀림
정답 근거
을(에피쿠로스)은 방탕한 자들의 감각적 쾌락을 쾌락으로 보지 않고, 사려 깊음을 통해 얻는 몸의 고통과 마음의 혼란으로부터의 자유, 곧 정신적이고 지속적인 쾌락을 추구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을이 정신적 쾌락보다 감각적 쾌락을 추구해야 한다고 본다는 3번은 을의 입장으로 옳지 않다.
선지별로 왜 틀렸나
①
함정 덕을 강조하는 표현이 동양 윤리처럼 보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이 아니라고 착각할 수 있다.
갑(아리스토텔레스)은 이성을 탁월하게 발휘하여 덕에 따라 살아갈 때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보므로, 덕은 행복한 삶에 반드시 필요하다. 옳은 진술이다.
②
함정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표현이 제시문에 그대로 나오지 않아 망설이기 쉽다.
갑은 행복을 '인간의 모든 행위가 추구하는 최고선'이라고 하였으므로, 행복을 인간 삶의 궁극적 목적으로 본다. 옳은 진술이다.
④
함정 쾌락주의를 감각적 즐거움을 늘리는 것으로만 알고 있으면 이 진술을 을의 입장이 아니라고 판단하기 쉽다.
을은 쾌락을 '몸의 고통이나 마음의 혼란으로부터의 자유'라고 정의하므로 옳은 진술이다.
⑤
함정 을이 쾌락을 추구한다는 점만 보고 욕망의 절제와는 거리가 멀다고 오해할 수 있다.
갑은 이성에 따라 지나침과 모자람을 피하는 덕 있는 삶을, 을은 방탕한 쾌락을 멀리하고 사려 깊음으로 마음의 평온을 얻는 삶을 강조하므로 둘 다 과도한 욕망의 절제를 강조한다. 옳은 진술이다.
이 문항이 묻는 능력
'쾌락주의'라는 이름만 보고 에피쿠로스를 감각적 쾌락 추구자로 단정하는 학생을 가려내며, 쾌락의 질(정신적·지속적)과 고통의 부재라는 정의를 정확히 아는지 확인한다.
다음에 비슷한 문제를 만나면
제시문의 핵심어(최고선·덕·이성 /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방탕한 쾌락 부정)로 사상가를 먼저 확정한 뒤, 각 선지의 주장을 그 사상가의 핵심 입장과 대조한다. 발문이 '옳지 않은 것'이므로 사상가 입장과 반대되는 진술 하나를 찾는다.
관련 개념
에우다이모니아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행복 개념으로, 단순한 쾌락이 아닌 인간 고유의 기능(이성)을 탁월하게 발휘하는 활동 속에서 실현되는 번영·잘 삶의 상태.
쾌락주의적 행복관행복을 쾌락의 획득과 고통의 회피로 정의하는 관점. 에피쿠로스는 고요한 정신적 쾌락(아타락시아)을,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쾌락을 강조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관 에피쿠로스의 행복관 최고선 아타락시아 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