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갑은 아리스토텔레스, 을은 에피쿠로스이며,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유덕함(덕)은 단순한 외적 증진 수단이 아니라 행복을 구성하는 필수 조건이므로 옳지 않은 것은 ①번이다.
핵심 개념
아리스토텔레스와 에피쿠로스의 행복론에서 덕과 이성의 역할, 그리고 참된 행복의 의미를 비교하여 이해하는 문항이다.
단서 따라가기
갑: 행복은 가장 완전하고 자족적이며, 여러 좋음 중에서 최고의 좋음이다. ... 고유한 기능은 정신의 이성적 활동이다.행복을 최고선이자 궁극 목적으로 보고, 이성에 따르는 덕스러운 영혼의 활동을 강조함 갑 ➔ 아리스토텔레스
을: 행복한 삶의 시작이자 끝은 쾌락이다. ... 공허한 욕망들에서 오는 쾌락은 얻기 어렵거나 해악을 낳으리라고 생각해야 한다.쾌락을 최고선으로 보되, 육체적 고통과 마음의 불안이 없는 상태(아타락시아)를 참된 쾌락으로 규정함 을 ➔ 에피쿠로스
정답 근거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행복은 '덕과 일치하는 영혼의 활동'으로 정의된다. 덕(유덕함)은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단순한 도구적·외적 증진 수단이 아니라, 행복을 구성하는 본질적이자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다. 따라서 덕을 단순한 증진 수단에 불과하다고 서술한 ①번은 옳지 않은 설명이다.
선지별로 왜 틀렸나
②
함정 행복 외에 다른 선(명예, 부 등)도 목적이 될 수 있다고 여겨 궁극적 목적이라는 표현을 의심하기 쉽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른 모든 목적의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서 추구되는 가장 완전하고 자족적인 최고선, 즉 인간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행복이라고 보았으므로 옳은 진술이다.
③
함정 쾌락주의자이므로 모든 쾌락을 긍정하고 적극적으로 추구할 것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에피쿠로스는 감각적이고 순간적인 육체적 쾌락이나 불필요한 공허한 욕망을 무분별하게 좇을 경우 오히려 더 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불안을 초래한다고 보았으므로 옳은 진술이다.
④
함정 쾌락주의의 명칭에 얽매여 쾌락을 끊임없이 늘려가는 적극적 쾌락을 주장했을 것이라 착각하기 쉽다.
에피쿠로스는 몸의 고통이 없고 마음에 불안이 없는 평온한 상태(아타락시아)를 소극적 쾌락이자 참된 행복으로 보았으므로 옳은 진술이다.
⑤
함정 에피쿠로스는 감각적 경험과 쾌락을 중시하므로 이성의 역할을 부정했을 것이라고 단정하기 쉽다.
갑(아리스토텔레스)은 인간 고유의 기능인 이성을 온전히 발휘하는 덕스러운 활동을 강조했고, 을(에피쿠로스) 또한 쾌락과 고통을 신중하게 헤아리고 헛된 욕망을 절제하기 위해 실천적 지혜(사려 깊은 이성적 숙고)가 필수적이라고 보았으므로 공통 입장으로 옳은 진술이다.
이 문항이 묻는 능력
에피쿠로스를 단순한 쾌락 지상주의자로 오인하거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덕과 행복의 관계를 '수단-목적'의 도구적 관계로 왜곡하여 이해하는 함정을 극복할 수 있는지 평가한다.
다음에 비슷한 문제를 만나면
사상가 제시문 매칭형 문항은 핵심 키워드(최고의 좋음·이성적 기능 ➔ 아리스토텔레스, 시작이자 끝은 쾌락·공허한 욕망 경계 ➔ 에피쿠로스)를 통해 사상가를 확정한 뒤, 각 사상가가 정의하는 행복의 본질, 덕(德)과의 관계, 쾌락의 성격, 이성의 쓰임새를 선택지와 1:1로 대조하여 판별한다.
관련 개념
에우다이모니아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행복 개념으로, 단순한 쾌락이 아닌 인간 고유의 기능(이성)을 탁월하게 발휘하는 활동 속에서 실현되는 번영·잘 삶의 상태.
쾌락주의적 행복관행복을 쾌락의 획득과 고통의 회피로 정의하는 관점. 에피쿠로스는 고요한 정신적 쾌락(아타락시아)을,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쾌락을 강조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최고선과 덕 에피쿠로스의 아타락시아 고대 서양의 행복론 소극적 쾌락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