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삶의 의미는 인간 스스로 부여', '죽음 앞으로 미리 달려가 보아야', '본래적 실존 회복'은 하이데거의 단서이므로, 죽음에 대한 성찰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든다는 3번이 정답이다.
핵심 개념
실존주의 관점에서 죽음은 회피할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하고 본래적인 삶을 살게 하는 계기가 된다.
단서 따라가기
인간 스스로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삶의 의미는 미리 주어지지 않고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실존주의적 인간관 제시문 ➔ 하이데거 / ②번 선지 판단 (틀림)
죽음을 회피하지 말고 죽음을 직시하며 죽음 앞에 서 볼 때죽음을 미리 자각하는 것이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는 입장 ①·④·⑤번 선지 판단 (틀림)
인간은 본래적 실존을 회복할 수 있다죽음에 대한 성찰이 진정한 자기 모습을 되찾게 한다 ③번 선지 판단 (옳음)
정답 근거
제시문을 주장한 사상가는 하이데거이다. 그는 삶의 의미가 본래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부여하는 것이며,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며 죽음 앞에 서 볼 때 본래적 실존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성찰이 삶을 보다 의미 있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3번이 정답이다. (하이데거의 죽음관은 2022 개정 통합사회 교과에서 직접 다루지 않는 윤리 영역 내용이지만, 제시문만으로 판단할 수 있다.)
선지별로 왜 틀렸나
①
함정 '참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라는 앞부분이 제시문의 '진정한 자기의 모습'과 같아 전체가 맞는 진술로 보인다.
하이데거는 진정한 자기 모습으로 살려면 죽음을 회피하지 말고 직시해야 한다고 했으므로, 죽음을 회피해야 한다는 선지는 제시문과 정반대이다.
②
함정 제시문 첫 문장 '삶에는 본래 어떤 의미가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를 '의미가 없다'로만 읽으면 이 선지가 맞는 것처럼 보인다.
제시문은 의미가 미리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했으므로, 인간이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는 진술은 틀리다.
④
함정 '죽음에 대해 사유하는'이라는 표현이 제시문의 '죽음 직시'와 겹쳐 보여 서술어의 부정을 놓치기 쉽다.
제시문은 죽음 앞에 서 볼 때 본래적 실존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하여 죽음에 대한 사유가 삶을 돌아보게 한다고 본다. 누구도 삶의 소중함을 발견할 수 없다는 진술은 이와 반대이다.
⑤
함정 죽음을 직시한다는 말에서 막연히 두려움·절망을 떠올리면 이 선지가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제시문은 죽음에 대한 숙고가 절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본래적 실존을 회복하게 하는 계기라고 보므로, 절망에 이르게 할 뿐이라는 진술은 틀리다.
이 문항이 묻는 능력
제시문의 어구('참된 자신의 모습', '죽음에 대해 사유')를 앞부분에 그대로 두고 뒷부분의 서술어만 '회피해야', '할 수 없다'로 바꾼 선지를 끝까지 읽어 걸러 낼 수 있는지를 가린다.
다음에 비슷한 문제를 만나면
죽음에 관한 사상가 문항은 먼저 '죽음을 대하는 태도(회피·직시·무관심)'와 '죽음이 삶에 주는 의미(절망·성찰의 계기)'를 제시문에서 찾아 적고, 선지의 서술어가 이 두 가지와 같은 방향인지, 아니면 '없다·뿐이다'로 뒤집었는지를 확인한다.